위험 감수와 행운의 심리학
2007년,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가 10년간 400명을 추적 관찰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과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교한 이 연구에서, 한 가지 놀라운 차이가 발견됐다. 운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시도할 확률이 82% 더 높았고, 실패 후 재도전까지 걸리는 시간이 절반 이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춰서가 아니었다. 단지 위험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을 뿐이다.
당신도 이런 사람을 본 적 있지 않나? 같은 프로젝트 제안서를 내밀어도 누군가는 "이건 기회야"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실패하면 어쩌지?"라고 먼저 걱정한다. 둘 다 똑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도약대를 보고 어떤 사람은 낭떠러지를 볼까? 그리고 더 흥미로운 질문. 운 좋은 사람들은 정말로 위험을 덜 느끼는 걸까, 아니면 위험을 다르게 계산하는 걸까?
운 좋은 사람들이 보는 '다른 확률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만은 사람들이 동일한 확률을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의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손실을 이득보다 약 2.25배 더 크게 느낀다. 10만 원을 잃는 고통이 1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두 배 이상 강렬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와이즈먼 교수가 발견한 '운 좋은 사람들'은 이 비율이 달랐다. 그들은 손실과 이득을 거의 1:1로 인식했다.
2019년 서울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한국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답한 응답자 중 67%가 "새로운 업무 기회가 생기면 일단 해본다"고 답했지만, "운이 나쁜 편"이라고 답한 그룹에서는 28%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흥미로운 건, 두 그룹의 실제 연봉과 직급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객관적 성공 지표가 아니라 주관적 운 인식이 위험 감수 태도를 결정했다.
"운 좋은 사람들은 위험을 더 적게 보는 게 아니라, 실패를 다르게 정의한다."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박사과정 김민준 연구원은 스타트업 창업자 89명을 3년간 추적한 질적 연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성공한 창업자들은 '완전한 실패'를 거의 상상하지 않았어요. 대신 '부분적 성과', '배움', '다음 기회를 위한 발판' 같은 중간 지점들을 촘촘하게 설정했죠." 그들에게 위험 감수는 도박이 아니라 실험이었다. 실패해도 얻는 게 있다고 믿었기에, 계산된 확률표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통제 환상이 만드는 행운의 착시
1975년 심리학자 엘렌 랭어는 예일대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복권을 나눠주되, 절반에게는 "본인이 직접 번호를 고르게"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무작위로 배정된 번호"를 줬다. 당첨 확률은 완전히 동일했다. 그런데 며칠 후 "복권을 팔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스스로 번호를 고른 사람들은 평균 8.67달러를 요구했고, 무작위 배정된 사람들은 1.96달러만 요구했다.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첨 가능성을 4배 이상 높게 평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통제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다. 실제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으면 불안이 줄어들고 행동이 적극적으로 변한다. 운 좋은 사람들이 위험을 덜 두려워하는 핵심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은 자신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령 그게 환상일지라도 믿는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자.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창업 후 5년 내 폐업률은 약 64.3%다. 그럼에도 매년 14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사업자가 등록된다. 왜일까?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한국 예비창업자 300명을 인터뷰한 결과, 87%가 "내 경우는 다를 것"이라고 답했다. 통계는 남의 이야기고, 자신의 노력과 선택은 특별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게 비합리적일까? 어쩌면 이 '합리적 낙관주의'가 없었다면 인류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패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비밀
실리콘밸리에는 'Fail Con'이라는 컨퍼런스가 있다. 성공 사례가 아니라 실패 사례만 발표하는 행사다. 2010년 처음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17개 도시에서 열린다. 한국에서도 2018년부터 '실패박람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매년 수천 명씩 끌어모을까? 간단하다. 실패를 데이터로 보는 관점의 전환 때문이다.
운 좋은 사람들은 실패를 '종착역'이 아니라 '경유지'로 본다.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캐롤 드웩 교수의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녀는 수천 명의 학생을 추적 관찰하며 발견했다. 어려운 문제를 틀렸을 때 "난 수학을 못해"라고 말하는 아이들과 "이 방법은 안 되는구나"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20년 후 삶이 완전히 달랐다. 후자는 더 많은 직업적 도전을 시도했고, 평균 연봉도 32% 높았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창기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만 5번 갈아엎었어요. 포털 순위도 한때 7위까지 떨어졌죠. 그때마다 '이번엔 왜 안 됐지?'를 분석하는 게 습관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 야후와 다음이 압도적이던 시장에서 네이버가 1위로 올라선 건 2003년이다. 실패를 5번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다. 단지 다음 시도를 위한 더 나은 출발점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는 실패를 수집하기보다 숨기는 데 익숙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1년 발표한 '청년 경력 단절 보고서'에 따르면, 첫 직장 퇴사 후 재취업까지 평균 8.3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실제 구직 활동 기간은 4.1개월에 불과했다. 나머지 4개월은? "이력서에 공백이 생기는 게 두려워" 준비하는 척 시간을 보낸다는 응답이 68%였다. 실패를 데이터가 아니라 낙인으로 보는 문화가 만든 공백이다.
확률이 아니라 시퀀스를 읽는 능력
2016년,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대 1로 이겼다. 그런데 유일하게 이세돌이 이긴 4국의 78수는 "알파고가 계산한 승률 0.007%의 수"였다. 알파고는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수라고 판단했지만, 이세돌은 그 수를 뒀고, 결과는 역전승이었다. 왜 인간이 이겼을까? 알파고는 '확률'을 계산했지만, 이세돌은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운 좋은 사람들에게는 이세돌 같은 능력이 있다. 그들은 단일 사건의 성공 확률보다 연속된 시도의 누적 확률을 본다. 창업 1회 성공률이 35.7%라면, 3번 시도했을 때 누적 성공 확률은? 간단한 확률 계산으로도 약 76.5%까지 올라간다. (1 - 0.643³ = 0.735)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첫 번째 시도의 35.7%만 보고 "위험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배달의민족을 만든 김봉진 의장은 배민 이전에 두 번의 창업 실패를 경험했다. 2004년 음식 커뮤니티 '푸드링크', 2007년 레스토랑 예약 서비스 '위시켓'이 그것이다. 배민이 성공한 건 2010년, 세 번째 시도였다. 만약 그가 첫 실패 후 "창업은 내 길이 아니야"라고 판단했다면? 지금 한국에서 배달앱 시장점유율 1위(2023년 기준 약 58%)를 차지한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리학에서 이를 '연속 시행 효과(Serial Trial Effect)'라고 부른다. 같은 도전을 반복할수록 학습 곡선이 작동해 성공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카네기멜론대 연구팀이 신제품 출시 데이터 2,300건을 분석한 결과, 같은 회사가 두 번째 출시한 제품의 성공률은 첫 제품보다 평균 2.4배 높았고, 세 번째는 3.8배 높았다. 운 좋은 사람들은 이 시퀀스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한 번의 실패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운 좋은 사람'이 되는 실전 전략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고방식을 체화할 수 있을까? 위험 감수가 타고난 성격의 문제라면 답이 없겠지만, 다행히 연구들은 이것이 학습 가능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와이즈먼 교수는 '운 학교(Luck School)'라는 8주 과정 워크숍을 진행했고, 참가자의 80%가 "스스로 운이 좋아졌다"고 보고했다. 그가 제시한 전략을 한국 맥락에 맞춰 재구성하면 이렇다.
- 작은 위험 일지 쓰기: 매주 하나씩 '편안한 범위를 벗어난 선택'을 기록하세요.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 걸기, 회의에서 반대 의견 내기, 새로운 업무 자원하기 등. 3개월 후 당신은 이 선택들이 얼마나 낮은 실제 위험을 가졌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 실패 복기를 성공 복기만큼: 한국 직장 문화에서는 성과 보고서만 쓰지, 실패 보고서는 잘 안 씁니다. 개인적으로라도 시도해보세요. "왜 안 됐지?"를 5번 반복해서 물으면, 운이 아니라 변수가 보입니다.
- 확률 프레임 바꾸기: "이번 프로젝트 성공률 40%"가 아니라 "세 번 하면 한 번은 대박"으로 말해보세요. 같은 수치를 다르게 프레이밍하면 감정 반응이 바뀝니다.
- 타인의 도전 응원하기: 심리학의 '관찰 학습' 효과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험 감수를 응원하고 결과를 함께 분석하면, 내 차례가 왔을 때 저항이 줄어듭니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전략이 '무모한 도박'을 권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계산된 위험(Calculated Risk)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서, 위험 자체에 대한 과장된 공포를 줄이는 것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MZ세대는 YOLO(You Only Live Once)에서 JOMO(Joy of Missing Out)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작정 즐기기보다 의미 있는 선택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성숙한 위험 감수다.
운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운 좋은 사람들은 정말 특별한 걸까? 와이즈먼 교수의 10년 연구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행운은 우연이 아니라 태도의 산물이다." 그들은 더 똑똑하거나, 더 유능하거나, 더 많은 자원을 가져서 운이 좋았던 게 아니다. 단지 기회를 더 많이 시도했고, 실패를 다르게 해석했고, 다음 시도까지의 시간을 짧게 가져갔을 뿐이다.
2023년 한국갤럽이 진행한 '한국인의 행복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답한 사람들의 평균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7.2점이었고, "운이 나쁜 편"이라고 답한 사람들은 4.8점이었다. 그런데 두 그룹의 연소득, 학력, 건강 지표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 삶의 질을 결정했다. 이게 운의 심리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통찰이다.
"행운을 믿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기회로 보이고, 불운을 믿는 사람에게는 같은 세상이 장애물로 보인다."
그러니 오늘 오늘의 포춘쿠키를 열어보는 당신에게, 그저 재미로 읽는 메시지가 아니라 당신 안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신호로 받아들이길 권한다. 중요한 건 쿠키 속 문구가 아니라, 그 문구를 읽고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이다. 위험은 언제나 거기 있었다. 다만 당신이 그걸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행운은 하늘이 주는 선물이 아니다. 위험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 실패 후 다시 시도하는 속도, 그리고 "이번엔 될지도 몰라"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용기가 만드는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운을 기다리지 말고 위험을 다르게 읽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어쩌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 단지 그걸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