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운도 좋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월스트리트의 한 트레이더는 하루아침에 수십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는 6개월 뒤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했고, 3년 만에 그 회사를 수백억에 매각했다. 같은 시기, 비슷한 손실을 입은 또 다른 트레이더는 우울증에 빠져 5년간 경력 공백을 겪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능력? 운?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무언가?
우리는 흔히 운이 좋은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겪은 실패와 좌절의 횟수는 평범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단 하나. 그들은 넘어진 뒤 다시 일어서는 속도가 빨랐다는 것.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회복 탄력성(Resilience)' 또는 '레질리언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최근 연구들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밝혀내고 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실제로 더 많은 '행운'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넘어지는 건 운이지만, 일어서는 건 선택이다
영국 하트퍼드셔 대학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10년간 4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운'에 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참가자들을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그룹과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문을 주며 사진이 몇 장 실려있는지 세어보라고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균 몇 초 만에 답을 찾았지만,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몇 분씩 걸렸다.
비밀은 간단했다. 신문 2페이지에 "그만 세세요. 사진은 43장입니다"라는 큰 문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걸 보지 못했을까? 와이즈먼 교수는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불안감 때문에 과제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예상 밖의 기회를 놓쳤다고 분석했다. 반면 운이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더 여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로 주변을 관찰했다.
한국심리학회가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직장을 잃은 1,2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6개월 내에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회복 탄력성 척도'에서 평균 32% 높은 점수를 받았다. 더 흥미로운 건, 이들이 찾은 새 직장의 연봉이 이전보다 평균 18% 높았다는 점이다. 실패를 빨리 수용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뜬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나은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실패를 덜 겪는 게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는 속도가 빠른 사람이다."
뇌는 고통을 기억하지만, 성장도 기억한다
신경과학자들은 회복 탄력성의 비밀을 뇌에서 찾아냈다. 스탠퍼드 대학의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활성화되는 편도체(Amygdala)의 반응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편도체가 활성화되더라도,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 빠르게 개입해 감정을 조절한다. 쉽게 말해, 그들의 뇌는 "이건 위기가 아니라 도전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능력이 선천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시간 대학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연구팀은 8주간의 인지행동치료만으로도 전전두엽의 활성도가 평균 27%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회복 탄력성은 근육처럼 훈련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인구 10만 명당 24.6명(2022년 기준)에 달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 수치의 배경에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와 "한 번의 좌절을 영구적 패배로 받아들이는 경직된 사고방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넘어지는 법은 배웠지만, 다시 일어서는 법은 배우지 못한 것이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보이는 기회다
당신도 이런 경험 있지 않나요? 힘든 일을 겪고 난 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적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신의 섭리'나 '하늘이 준 기회'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다르게 본다. 이것은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역경을 겪은 후 두 가지 행동 패턴을 보인다. 첫째,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서울대 심리학과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실직 후 3개월 내에 평균 15명 이상의 새로운 사람을 만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재취업률이 2.3배 높았다. 둘째,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창업 실패를 경험한 기업가 중 1년 내에 다시 도전한 사람들의 두 번째 창업 성공률은 68%인 반면, 3년 이상 공백을 둔 사람들의 성공률은 23%에 불과했다(중소벤처기업부, 2022).
이들이 더 많은 '행운'을 경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회의 절대적 노출 횟수가 많기 때문이다. 로또를 100번 사는 사람이 1번 사는 사람보다 당첨 확률이 높은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의 실패 후 움츠러든다. 그리고 움츠러든 사람에게는, 기회가 와도 보이지 않는다.
"행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게 아니라, 계속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것이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미래를 결정한다
2016년, 삼성전자는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폭발 사고로 3조 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전 세계 250만 대를 리콜하는 초유의 사태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삼성의 스마트폰 사업이 끝났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삼성은 1년 뒤 갤럭시 S8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2017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삼성은 사고 원인을 700명의 연구진과 20만 개의 디바이스를 동원해 분석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실패를 숨기거나 축소하는 대신,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 지향적 대응(Learning-Oriented Response)'이라고 부른다. 실패를 수치가 아닌 데이터로 받아들이는 태도 말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 교授가 의료 사고 연구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의료 사고 보고 건수가 많은 병원일수록, 실제 환자 사망률은 낮았다. 역설적이지만, 실패를 숨기지 않고 공유하는 조직이 결국 더 안전하고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도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그들은 실패를 빨리 인정하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실패를 낙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2023년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청년 중 73%가 "한국 사회는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실패를 숨기고, 다시 도전하는 대신 안전한 길만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새로운 기회를 만날 확률도 함께 사라진다.
일상에서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구체적인 방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을까? 거창한 결심이나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건 아니다. 심리학자들이 권하는 방법은 의외로 일상적이다.
- 작은 실패를 의도적으로 경험하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교수는 '백신 이론(Vaccination Theory)'을 제안한다. 작은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큰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 주문해보기,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어보기 같은 사소한 도전이 누적되면 심리적 면역력이 강화된다.
- 실패를 기록하고 리뷰하라: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실패 경험을 글로 쓰는 행위만으로도 감정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 중요한 건 감정을 토해내는 게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가?"를 구조화하는 것이다. 실패 일지를 3개월만 써도 뇌의 전전두엽 활성도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 지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회복 탄력성 연구의 대가 조지 보나노(George Bonanno) 교수는 "고립이 회복 탄력성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실패를 판단하지 않고 들어줄 사람 3명만 있어도, 심리적 회복 속도는 2배 이상 빨라진다. 꼭 친한 친구일 필요는 없다. 오늘의 포춘쿠키처럼 작은 위로를 주는 일상적 루틴도 심리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
-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Julian Rotter)의 '통제 소재 이론(Locus of Control)'에 따르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사람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 반면 통제 가능한 영역에 집중하는 사람은 작은 성공을 축적하며 자기 효능감을 키운다. 날씨는 통제할 수 없지만, 우산을 챙기는 건 당신의 선택이다.
이 모든 방법의 핵심은 하나다. 회복 탄력성은 고통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나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마지막 하나의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라고 말했다.
운을 부르는 사람들의 숨겨진 공통점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는 모두 '운'을 믿고 싶어 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조금이라도 확신을 얻고 싶은 마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욕구. 이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운에만 의지하는 사람과 운을 끌어당기는 사람은 다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10년 추적 연구는 이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자신을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 그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3번의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새로운 길로 출근하기, 평소 먹지 않던 메뉴 주문하기, 다른 분야의 책 읽어보기 같은 사소한 변화들이다. 반면 자신을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0.4번의 새로운 시도를 했다. 차이는 무려 5배 이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실제로 더 많은 기회를 만나는 게 아니라,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는 민감도가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민감도는 회복 탄력성에서 나온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도가 많으니 우연한 기회를 만날 확률도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운의 선순환'이다.
반대로 한 번의 실패에 주눅 들어 움츠러든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는 안전한 루틴 속에 머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예상 밖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운이 없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는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운이 찾아올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 것이다.
"세상에 운이 좋은 사람은 없다. 다만 운을 알아보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당신 앞에 놓인 역경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넘어졌다는 건 적어도 걷고 있었다는 증거이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당신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집니다. 그 강함이 쌓여 회복 탄력성이 되고, 그 탄력성이 다음 기회를 알아보는 눈이 됩니다. 운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사람의 손에 조용히 쥐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이 겪고 있는 그 힘든 순간이, 언젠가 "그때 넘어진 덕분에 이걸 발견했어"라고 말하게 될 행운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